Wednesday, July 25, 2012

TopCat at Freud Museum, London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한번도 신겨보지 않은 신발을 팔겠다니, 무슨 사연인가! 가난하지만 행복했을 엄마아빠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리던 어느날, 어쩌면 길가다 예쁜 아기 신발이 눈에 들어와 기쁜 마음으로 산다. 아기가 태어나고 어쩌면 똑같은 신발을 선물받게되자 어색한 미소로 고마워 한다. 유아용품 가게에 가서 다른 것으로 바꿀까도 생각하지만 현금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아니면 일이 잘못되어 어쩌면 그 신발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그 신발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엄마에겐 고통이 되자,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한참을 이야기한다. 포장 그대로 쓰레기통에 살짝 넣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어떤 모르는 아이가 신고 아장아장 걷는 모습도 나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으리라.

이 문구는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쓴 가장 짧은 소설로 회자된다. 어느날 헤밍웨이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맨하탄의 알곤킨(the Algonquin)의 원탁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던 중 누군가의 제안으로 짧은 소설쓰기 내기에서 식탁의 냅킨에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있는 이 여섯 단어의 소설을 써서 우승했다고 한다.

어쩌면 어떤 호사가가 지역 신문광고에서 읽고 이 문구의 문학성(literariness; literarite) 때문에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 간결한 효과가 발칙하게도 헤밍웨이를 연상시킨 것이리라.
문학은 본질상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상력있는 함축적 표현을 추구한다. 우리는 일상 언어행위가 시적 경지에 이를 경우 그 심미적 거리를 두고 문학이라 부른다.

Tuesday, July 24, 2012

자유시(Free verse; Vers libre)

A.
전통적인 의미에서 시가 압운체계(rhyme scheme)와 명시적 운율(meter)을 바탕으로 하지만, 자유시는 무압운, 비운율의 ‘열린 형식’의 시이다. 자유시란 운율시(metrical verse)의 파생 장르(즉, 시)이면서도 ‘운율 피하기’(즉, 자유)라는 의미에서 용어상 모순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작시법이 혼합된 형태이다. 자유시는 시의 일반 규칙과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그 시적 효과를 주로 개별적 리듬과 불규칙해 보이는 시행에 의존한다. 자유시는 압운체계가 없다는 점에서 무운시와 유사하지만, 무운시와는 달리 약강5음보의 운율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또한 자유시는 행 배열이외에는 산문과 본질적 차이가 없지만, 압운이 없지만 내재율을 가진 운문이라는 점에서 산문체 리듬에만 의존하는 산문시(prose poems)와도 다르다. 자유시는 기본적으로 시행이 리듬 단위이며, 규칙적 음보와 뚜렷한 압운이 없기 때문에 구문이나 억양과 같은 내적 논리에 따라 유기적으로 구성된다. 연 구성 또한 의미 단위로 이뤄짐에 따라 길이가 제각각이고 시각적으로 특이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자유시는 극단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띠는데, 이를 통해 실제 삶의 경험을 보다 사실적으로 재구성한다. 삶의 지각, 인식, 정서, 상상의 과정을 복제, 투사, 재현 하려는 자유시 정신이 시인과 독자를 끊임없이 매료시키는 요소이다. 즉, 자유시는 정해진 형식이나 외적 규범이 없어서 시인의 개성이 보다 분명히 확보되고, 시의 속도, 강세 등을 창출하기 위해 독자의 개입이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유형의 시이다.
B.
자유시는 인류의 구어 전통에 바탕하여 규칙적 운율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 문학사상 일찍부터 발견되는 가장 오랜 시 형식 중 하나로서, 서정시 전통에 그 맥이 닿아있다.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을 갖고 있는 만큼 그 스펙트럼이 넓고 운율 배경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자유시는 압운체계와 운율형식이 지배해온 문학사에서 오랫동안 억압되어 오다가 20세기 이미지즘, 아방가르드 같은 모더니즘 자유시로 ‘억압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pressed)’을 이뤄낸다. 용어상 자유시는 엄격한 전통운율로부터 부분적으로 자유로워진, 17세기 프랑스 라퐁텐(La Fontaine)과 그의 동료들의 해방된 시(vers libéré)를 기원으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시라는 명칭은 대체로 파격적 기법으로 불규칙한 운율을 시도한 귀스타브 칸(G. Kahn)이나 쥘 라포르그(J. Laforgue) 등과 같은 19세기말 프랑스의 시인들의 시작 활동에서 기인한다. 영어권에서 자유시는 오래전부터 비하의 표현으로 쓰이다가 20세기 초 문학운동의 구호로 등장한 후 중립적인 기술어(記述語)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영문학에서 현대적 의미의 자유시는 이미 1611년 흠정역 성경(the King James Bible)에 나타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중 시편(Psalms)과 아가서(the Song of Solomon)는 고대 히브리 시가의 병행구조와 카덴스(cadence)를 산문 영어로 모방한 것이다. 특히 시편은 1380년대 위클리프(J. Wycliffe)이래 오늘날까지 다양한 형태의 자유시로 번역돼왔다. 이와 같은 성경의 문체는 18세기 중반 크리스토퍼 스마트(Ch. Smart)의 장편 자유시 『어린양을 기뻐하라』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자유시는 19세기 많은 영미 시인들의 형식실험을 통해 발전된다. 윌리엄 블레이크(W. Blake), 매슈 아널드(M. Arnold) 등은 규칙적 음보에서 벗어난 문체를 구사하고, 크리스티나 로제티(Ch. Rossetti), 코벤트리 팻모어(C. Patmore), 브라운(T. E. Brown) 등은 정해진 격식이 없는 압운시를 시도했다. 그중에서도 미국시인 월트 휘트먼(W. Whitman)은 현대 자유시의 중요한 선구로 알려진 비운율시 『풀잎』을 썼다. 그의 문체 역시 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강세와 음절수의 규칙을 무시한 다양한 길이의 시행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구어에 바탕한 형식을 통해 예기치 못한 곳에 강세를 둘 뿐 아니라 문법적 강조, 평행구조, 전후 조응(anaphora, 특히 첫머리 어구반복), 산문처럼 긴 시행 등을 영시에 되살렸다. 반복되는 음보를 통해 리듬효과를 창출하는 전통시와는 달리 그는 특정 낱말, 구, 절, 시행 등 의미 단위의 반복, 균형, 변주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휘트먼 이후 영어권 자유시는 대체로 번역 성경에 기원한 긴 시행으로부터 짧은 대화체로의 이행 과정이었다. 그밖에도 전통적 작시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낭만주의 이래 대부분의 서구 민족문학의 주요 경향을 이룬다. 러시아의 수마로코프(A. P. Smarokov), 푸시킨(A. S. Pushkin), 독일의 괴테, 횔더린(F. Hölderlin, 프랑스의 랭보(A. Rimbaud), 아폴리네르(G, Apollinaire) 등이 민족 고유의 운율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시를 썼다. 특히 독일의 하인리히 하이네(H. Heine)는 연작시 「북해」를 통해, 그리고 랭보는 산문모음집 『일루미나시옹』을 통해 자유시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자유시는 대체로 19세기말 프랑스의 상징주의시와 1차세계대전 전후 아방가르드 자유시를 의미한다. 이 시기의 자유시는 자의식적이고 자기선언적이며 운율에서 보다 철저히 자유로워지려는 시도였다. 20세기 초 영어권의 이미지즘 시인들은 습관적으로 시행과 문법적 단위를 일치시켰고, 이 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에즈라 파운드(E. Pound), 엘리엇(T. S. Eliot) 등도 다양한 형태의 자유시를 실험했다. 이후에도 앨런 긴스버그(A. Ginsberg)나 로버트 블라이(R. Bly)의 목록시(the catalog verse), 칼로스 윌리엄즈(W. C. Williams)의 변동음보(the variable foot) 이론, 찰스 올슨(Ch. Olson)의 투사시(the projective verse) 등을 통해 자유시를 실천하고 또한 이론적으로 옹호했다. 문학사에서는 아방가르드 자유시는 불어권의 랭보, 브르통(A. Breton), 에메 세자르(A. Césaire) 등과 칠레의 스페인어 시인 파블로 네루다(P. Neruda), 영어권의 찰스 톰린슨(Ch. Tomlinson) 등이 대표한다.
20세기 자유시는 그 다양성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유형의 자유시에는 운율시 못지않은 규칙성이 존재하는데, 전통시와의 차이점은 단지 그 규칙이 개별시의 언어와 텍스트 논리에 바탕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자유시는 내재율이 지배적이지만, 시인들은 필요에 따라 해방된 형식을 통해 운율시와 자유시 사이를 수시로 넘나든다. 심지어는 20세기말 신형식주의로 알려진 몇몇 시인 비평가들처럼 전통적 작시법의 음보, 압운, 연 형식 등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C.
자유시는 그 대중성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있다. 실제 시작 과정에서 특별한 형식적 제약이 없고 개별적, 내적 통제에 따라 전개되는 자유시가 갖는 곤경을 프로스트는 “네트 없이 테니스 치기”(playing tennis without a net)라는 은유를 통해 드러낸다. 그러나 자유시가 여전히 시로 인식되는 한, 나름의 구조와 리듬을 가지며 전통적인 운율시의 경우와 동일한 용어 및 방법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엇의 지적처럼, “시를 잘 짓고자하는 자에겐 어떤 시도 자유롭지 않다”고 할 것이다. 자유시는 외부에서 주어진 규칙이 없다 해도 여전히 어구반복, 약하나마 압운, 평행구조, 대조, 콤마 등을 통해 반복과 반향을 일으켜 리듬을 형성하고, 유사한 이미지나 낱말을 나열하여 음악적 효과를 내기 때문에 문장강세 운율(intonational metre)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유시는 운율 규범의 의도적 배제와 문장을 문법 혹은 의미단위로 분절한 시행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또한 자유시에서는 구조상 반복 못지않게 일회적 우연성이 중요하며, 시적 효과를 문법과 서로 다른 길이의 시행이나 연 사이의 긴장에 의존한다. 그 결과 자유시는 주어진 규범보다는 개별 시의 임의적 요소가 부각되고, 주로 청각에 기대는 정형시와는 달리 시마다 서로 다른 시각적 공간을 창조한다. 자유시는 시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시마다 독특한 형태와 예측 불가능한 구조의 역동성을 통해 한편으로 시 장르의 연속선상에서 놓이면서 다른 한편 수사적 측면에서 끊임없는 ‘낯설게하기’를 시도한다.
대부분의 자유시는 전통시처럼 시행의 관행을 따르지만, 시행의 길이를 규제하는 원칙이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른 길이를 통해 다양한 효과를 창출한다. 문법, 의미, 시각 단위의 어구로 시행을 구분함으로써 일률적인 정형시행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보다 짜임새 있는 구성이 가능하다. 반면 상투적 문법, 의미, 시각 단위 안에서 시행갈이를 폭력적으로 시도하는 경우는 전치사나 조사와 같은 기능어를 강조하여 파편화 혹은 탈자동화된 불연속적 읽기를 요구한다. 대체로 짧은 시행이 단절효과를 일으켜 흐름을 조절하고 무게를 보태는 반면, 긴 시행은 5음보 같은 전통적 시행의 한계를 넘어서는 탄력을 준다. 길이가 짧든 길든 등가의 시행으로 이뤄지는 자유시에서는 대체로 어떤 두 행의 길이도 일치시키지 않는데, 확장된 서사시나 짧은 서정시에서 긴 시행과 짧은 시행을 교차시켜 대화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자유시에서는 시어 또한 소리와 시각효과로 풍부한 의미를 형성하지만, 그 효과는 대체로 일회적이다. 가령 자유시에 압운이 나타난다 해도 시 전체 구도로서가 아니고 단어와 시행의 중간처럼 예상치 않은 곳에서 우연적 상황으로 종종 발생한다. 반면 자유시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한 페이지 전체에 걸쳐 시를 배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말라르메(S. Mallarmé)는 『주사위 던지기』에서 새의 깃털모양을 제시하기 위해 펼칠 수 있는 확장된 페이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 여백이 텍스트를 둘러싼 공간으로서 멈춤, 분리, 침묵의 이미지 등을 창출한다. 또한 자유시에도 다른 시의 경우처럼, 인쇄 기술과 새로운 시각 매체의 발전으로 시각적 장치에 영향을 받아왔다. 자유시는 타자기 자판이나 조판 상 가능한 상징이나 문자를 이용함으로써, 실제로 운율파악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운율을 파괴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Meyer Howard Abrams, Geoffrey Harpham, A Glossary of Literary Terms, Thomson Wadsworth, 2005.
Antony Easthope, Poetry as Discourse, Methuen, 1983.
Thomas Stearns Eliot, “Reflections on Vers LibreSelected Prose of T S Eliot, Ed. Frank Kermode, Faber 1975.
Harvey Seymour Goss, Sound and Form in Modern Poetry, U of Michigan P, 1964.
Alex Preminger, Terry Brogan et al (eds.), The New Princeton Encyclopedia of Poetry and Poetics, Princeton UP, 1993.

무운시(無韻詩; blank verse; vers blanc)

A.
일반적으로 시의 두 요소가 운율(meter)과 압운(rhyme)이라면, 무운시는 독특하고 고유한 운율은 있지만 압운이 없는 정형시다. 압운은 나름의 장점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실제 시작(詩作)에서는 운율 구조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무운시는 압운체계가 없다는 점에서 자유시와 유사하지만 운율이 드러나지 않는 ‘열린 형식’은 아니라는 점에서 자유시와 구별된다. 원래 이탈리아 시에서 제한요소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던 무운시는 영시에서는 문자 그대로 압운의 부재만을 의미한다. 무운의 약강5음보(iambic pentameter) 운율에 바탕한 무운시는 영시 전통에서 16세기 이래 가장 보편적이고 영향력 있는 시형식이다. 실제로 영시 전체의 3/4 정도가 무운시로 알려졌는데, 다소 느슨한 형태까지 고려한다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의 구어에 가까운 리듬의 무운시는 시극이나 서사시, 또는 장편 명상시에 주로 쓰인다.

B.
무운시는 이탈리아 11음절시(endecasillabo 또는 hendecasyllables) 가 압운 없는 형태로 변형돼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등장한 뒤 영국에 전해져 무압운 10음절 약강5음보 시로 정착했다. 무운시의 운율은 고전시대 약강 3음보에서 기원하는데, 고전시가인 영웅 서사시의 6음보의 어조와 중량감을 르네상스 이후 유럽문학에서 민족어로 표현하려는 일종의 모더니티 기획이었다. 이탈리아 문학에서 11음절시는 압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반행마다 한 번의 강세를 두었으며 때로는 9, 10음절의 시행도 허용했다. 그러나 11음절시는 당시 매우 대중적이고 문학사상 획기적인 성취였지만 이탈리아 문학의 주요 시형식으로 떠오르지는 못했다. 프랑스 등지에서도 이탈리아의 무운 시작에 영향을 받아 나름의 실험을 시도하지만 낱말 강세(word-accent)가 미약한 언어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반면,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와 밀튼(J. Milton)의 성취로 운문극의 중심 운율로 부상하고 시문학 전반에서 표준양식이 되었다.

영시에서 무운시 논의는 사실상 르네상스 이후 영시의 역사에 대한 논의에 다름 아니다. 무운시는 16세기 중반 와이엇(T. Wyatt) 경과 함께 이탈리아 정형시 소네트 형식을 영국에 도입했던 서리 백작 하워드(H. Howard가 시도한 베르길리우스의『아이네이스』번역에서 비롯한다. 그는 이탈리아의 몰자(Molza)가 『아이네이드』의 번역에서 구사했던 ‘압운을 무시한 자유로운 시’(versi sciolti da rima)를 모방했다. 그러나 서리 백작은 무운시의 도입 당시부터, 이탈리아 11음절시와는 달리, 매 시행마다 10음절과 약강으로 교차하는 강세를 엄격히 지켰다. 이는 이미 150여년 전 초서(G. Chaucer)가 10음절 시행을 정착시킨 전례를 따른 것이지만, 15세기 중반 음운체계의 변화로 인해 초서의 운율이 상실된 후라서 그가 일상 영어의 자연스런 리듬에 가장 가까운 약강 음보를 처음 시도했던 것이다. 뒤이어 새크빌(T. Sackville)과 노튼(T. Norton)의 비극 『고보덕(Gorboduc)』에서 단조로운 무운시를 구사한 이래 말로우(C. Marlowe)와 셰익스피어가 무운시를 극형식으로 확립했다. 셰익스피어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와 어조로 대부분의 모든 인물들의 대사를 약강5음보의 무운시로 씀으로써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한 시문학 분야에서도 밀튼이 『실낙원』을 비롯한 모든 서사시를 무운시로 쓴 이래 주된 시형식이 되었다. 그는 무운시의 유연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복잡한 구문구조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1660년 왕정복고 이후 극문학에서 희극은 주로 산문으로 쓰였지만 비극에서는 여전히 무운시가 18세기까지 이어졌다. 시문학에서는 17세기와 18세기 초에 영웅시격2행연구(heroic couplet)가 유행하자 무운시는 일시적으로 침체했지만 18세기말부터 다시 낭만주의 시인들과 빅토리아조 시인들에 의해 주요 형식으로 채택된다. 먼저 18세기말 자연시의 선구인 톰슨(J. Thomson)이 밀튼을 모방하여 대부분의 장시를 무운시로 구사함으로써 낭만주의 시 혁명을 이끈다. 워즈워스(W. Wordsworth)는 자전적 서사시 『서시』를 비롯한 주요 작품에서 보다 개인적 어조와 구어체를 무운시로 구현하고, 브라우닝(R. Browning)이 『반지와 책』등에서 구사한 극적 독백이 모두 낭독 어조와 일상의 구어 리듬을 무운시로 포착한다. 테니슨(A. Tennyson) 또한 『왕의 목가』등을 무운시로 썼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많은 시인들이 자유시로 전향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이츠(W. B. Yeats), 파운드(E. Pound), 엘리엇(T. S. Eliot), 오든(W. H. Auden), 프로스트(R. Frost), 스티븐스(W. Stevens) 등 주요 시인들이 무운시의 전통을 이었다. 특히 프로스트가 장편서사와 대화시에서 의미의 소리를 포착하기 위해 무운시를 성공적으로 구사한 반면, 엘리엇은 느슨한 무운시 『황무지』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무운 시극의 시도에서는 자의식적이고 시대착오적 느낌이다. 이처럼 영시에서 무운시는, 그 변형된 유형까지 고려하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두드러진 시형식이라 할 것이다.

무운시는 영시 이외에도 18세기 후반 독일 시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비란트(C. M. Wieland)가 비극 『귀부인 요한나 그레이』를 무운시로 쓴 이래 레싱(G. E. Lessing)의 『현인나탄』이 가장 영향력 있는 무운 시극이 되었다. 괴테는 자신의 산문작품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에』와『타소』를 무운시로 다시쓰기를 시도했고, 쉴러(F. Schiller)는『돈카를로스』를 무운시로 썼다. 쉴레겔(F. von Schlegel)은 무운시로 쓰인 셰익스피어를 번역함으로써 무운시의 틀을 확립했다. 독일의 무운시는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표현 형식으로서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19세기 내내 독일 시극의 표준 운율이 되어 호프만스탈(H. von Hofmannsthal)의 서정시극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는 릴케(R. M. Rilke)가 『두이노의 비가』의 일부를 무운시로 쓴 이래 서정 무운시는 점차 자유시로 대치되고, 무운시극은 산문으로 대체된다. 그때부터 전통적 무운시 운율은 배경으로만 가끔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 밖에 무운시는 러시아에서도 일정한 성취를 이뤘는데, 쉴러의 극작품 번역에서 처음 도입된 이래 푸시킨(A. Pushkin)이 성공적으로 구사했으며, 그 이후에도 서사와 성찰시에서 자주 나타난다.

무운시는 고전시대 서사시를 뒤이은 운문양식으로서,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하여 심화되는 모더니티의 다양한 양상을 구현해냄으로써 오랫동안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시형식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영문학에서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데 적합한 장치로 여겨왔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이래 아방가르드 자유시의 등장과 성공으로 무운시는 그 위상이 점차 흔들리고 있다.

C.
무운시는 압운시와는 그 구조가 다르다. 압운시가 대체로 동일한 수의 시행과 규칙적인 길이, 운율형식, 음보 등을 갖춘 연(stanza) 구분에 의존한다면, 보다 자유로운 무운시는 서로 다른 길이의 시단락(verse paragraphs)으로 구성된다. 압운체계는 비교적 짧은 길이의 시나 정형시에서 엄격할 수 있지만, 비극이나 서사시처럼 장시에서는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는 암기의 편의상 두운을 구사하기도 했다. 반면, 무운시는 압운이 없어 어순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의도적 구문도치, 중간휴지, 고전 서사시의 전치 효과 등이 가능한 문체적 장치이다. 또한 이행연구(couplet)나 각운을 갖춘 연과 같은 제약에서 벗어나 장편의 시작(詩作)에 용이하여 자연스럽게 서사시나 시극에 적합한 수단이 된다.

무운시란 이론적으로는 약강의 2음절 5쌍으로 구성된 10음절이 한 행을 이루는 시형식이다. 무운시의 바탕인 약강5음보는 영어의 일상 구어투에 가장 가까운 리듬으로 알려졌다. 가령, 기계적 반복음인 시계소리가 한국어에서는 낱말강세가 미약한 ‘똑딱똑딱’으로 느껴지는 데 반해, 영어에서는 ‘틱톡 틱톡’으로 뒤 음절에 강세가 분명한 ‘약강’ 리듬으로 들린다. ‘똑딱’으로도 ‘틱톡’으로도 들을 수 있는 시계소리가 실제 음이 아니라면 영어에는 약강 리듬 감각이 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약강5음보는 ‘약강’이 자연스런 영어의 기본 리듬이고 사람들이 한숨에 말할 수 있는 길이가 대체로 10음절(5음보)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어에 끼친 무운시의 영향은 일상영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이기 때문에 무운시가 약강5음보를 구사하는지 아니면 역으로 무운시가 채택한 운율이 영어의 자연스런 리듬형식으로 정착했는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무튼 무운시는 시극의 대화나 극적 독백처럼 극형식에서 특히 많이 구사될 만큼 일상어와 친화성이 있다.

그러나 무운시가 일상어 리듬감과의 유사성만으로 영시의 주도적 형식이 된 것은 아니다. 대체로 약강5음보라고 해도, 수많은 변이와 굴절이 있는 느슨한 일상 영어에 비해 무운시의 리듬은 격식과 규칙성이 강하다. 시적 형식은 내용을 형성하고, 시적 경험을 일상과는 구별지으며 경험현실에 질서를 부여한다. 게다가 무운시가 약강5음보라 해도 실제로는 완벽히 약강 운율일 수도 엄격히 10음절일 수도 없다. 무운시가 약강 운율만으로 구성된 경우는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 해도 그 단조로움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무운시는 약강격(iambic)을 기본으로 강약격(trochee), 약약강격(anapest), 강약약격(dactyl) 등 여러 음보가 결합됨으로써 각 행이 9음절에서 11음절에 이르지만, 대체로 5개의 강세음절이 있어 사실상 5음보를 유지한다. 대체로 한 편의 시에서 그 시행이 5음보보다 적으면 노래처럼 들려 진지한 소재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는 가볍고, 5음보가 넘으면 중간휴지가 발생하여 작은 단위로 나뉘기 십상이다. 가령 6음보(hexameter)의 시행은 두 개의 3음보(trimeter)로, 7음보(heptameter)는 4음보(tetrameter)와 3음보로 갈린다. 이처럼 무운시는 일정한 길이의 시행을 확보하면서 한 시행의 운율을 다음 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이는 짧은 길이나 불규칙한 시행의 자유시와는 달리 서사적 목소리를 분명히 드러내고 독자들이 강하게 몰입되도록 한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에서는 시행이 보다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의 정서로는 무운시가 다소 웅변적이고 장중하며 느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Thomas Stearns Eliot, “Notes on the Blank Verse of Christopher Marlowe” The Sacred Wood: Essays on Poetry and Criticism, Methuen, 1980.
Alex Preminger, Terry Brogan et al (eds.), The New Princeton Encyclopedia of Poetry and Poetics, Princeton UP, 1993.
Robert Burns Shaw, Blank Verse: A Guide to its History and Use, Ohio UP,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