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24, 2006

영국적임에 대하여(On Englishness)

모든 사물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인식될 수 있지만 영국적인 면만큼 그 이해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주제도 드믈 것이다.

amateurism vs. professionalism (Kazuo Ishiguro)
romanticism vs. classicism (J Middleton Murry & DH Lawrence)
conservativism
liberalism and neo-liberalism
the English self-deprecation
the English tea
the English humour
the English language

이 모든 주제가 만만치 않은 논의를 끌어들일 것이다. 이제 한 동안 이를 생각해볼 것이다.

수 년전 내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 그 첫인상은 바로 시골 부자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골 부자집에는 없는게 없다. 그러나 새것이 별로 없다. 버리고 새로 사기에는 아깝고, 그러나 도회지에 나가보면 새로운 제품들이 눈길을 붙들고.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Edmund Burke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명체는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밖에는 없다. 우리 인간도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방법으로 그 방향을 외부에서 찾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과거 전통에서 찾을 것인가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소위 영숙적 보수주의의 기본전제이다. 영국적 보수주의를 설명할 적절한 예로는 휴대전화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될 수 있다. 휴대전화 전파가 뇌파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앞으로 10여년이 지나야 구 임상관찰을 통해 유해 혹은 무해가 드러날 것이라고 한다. 영국의 매스컴은 이에 대해 대부분 그간 10년간은 유해한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무해가 드러날 때까지는 head set 등을 이용하도록 분위기를 몰고 간다. 반면에 상당한 정도 보수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은 유해로 판명날 때까지는 무해하다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견해를 피력할 때는 강하다 싶을 정도로 보수임을 자처하는 우리 상황과는 달리 그들의 부수성은 생활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감자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들 수 있다. 석회질로서 땅이 척박한 영국이나 아일랜드에는 자랄 수 있는 곡식의 종류에 한계가 있어 이웃 프랑스에 비하면 식탁의 질이 형편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식민지 개척자들은 식량혁명을 일으킬 요량으로 지금은 주식이나 다름없고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감자을 도입했지만, 한 동안 그들은 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감자가 성경에서 먹는 작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목사들이 특히나 즐기는 개고기처럼 성경에서 금지하지 않는 음식은 괜찮은 것으로 간주하는 우리와는 퍽이나 다른 정신에서 나온 사고이다. 이와 같은 보수성 때문에 그글은 왠만한 불편은 참아버린다. 못참겠어도 참는다. 그래도 못참겠다면 바꿀 것을 고려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 정당에 12년 이상씩 정권을 맡기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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